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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한지: 종이에 담긴 삶" - 2022 바리 한국주간

2022.05.13. | 993 Hit

2022 바리 한국주간 전시

전시 "한지: 종이에 담긴 삶"




전시개막 일시: 5월 26일(목) 19시

전시기간: 5월 27일부터 7월 25일까지

장소: 바리 스베보 성 - Piazza Federico II di Svevia, 70122, 바리


전시개막 이후로 스베보 성 운영시간에 따라 전시를 관람 할 수 있습니다.


개막식 입장 무료. 개막식 이후 전시 관람을 위해 스베보 성 입장권 구매.


《한지, 종이에 담긴 삶》은 대한민국의 제지 제조 역사의 근간이 되는 ‘한지(Hanji or Korean Paper)’를 통해 한국의 종이 문화와 다양한 쓰임 속 생활의 풍경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한지’는 한국의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종이를 일컫는다. 한지는 중국의 제조기술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삼국시대(약 기원후 2~4세기경)에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의 제조 기술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한국인들은 여기에서 나아가 한국의 특산종인 닥나무의 껍질을 주재료로 보다 발달된 독자적인 제지 기술을 확보하였다. 나아가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과 이웃한 일본에까지 종이를 수출하거나 제지기술을 전파시키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한국에서 한지는 기록을 위한 재료 뿐 아니라 부채나 우산 같은 생활용품이나 벽지나 창호 등 건축에서도 두루 쓰였다.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한지는 점차 잊혀지는 듯했지만 전통을 복원하려는 민관의 노력으로 한지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전시구성


1. 한지가 놓인 풍경

한지는 한국에서 종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전통 주거 양식에서 한지는 벽지이자, 장판으로, 그리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창호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나뭇살에 들기름 먹인 한지를 발라 비를 피해주는 우산으로 쓰이고, 햇빛이 강한 날에는 더위를 날리는 부채로도 쓰인다. 어두운 밤이 되면, 창문 사이로 비추는 달빛이 한지를 투과하며 은은한 정취를 풍긴다. 한국적 풍경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한지가 놓인 풍경이 펼쳐진다.


2. 한지로 전하는 마음

한지의 다른 이름은 천년의 종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리니경』(751)에는 죄를 씻고 수명 연장을 바라며 공들여 새긴 불법이 새겨져 있다. 닥종이로 만들어진 1300여년 전의 종이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그 옛날 선조들이 바라던 마음을 전한다. 또한 한지는 한국을 세계적인 기록 문화를 가진 국가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한반도를 지배한 조선(1293~1910)은 약 470여년간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본 그대로 남아 과거를 미래로 전했다. 그리고 현재 한지는 다시 마음을 전한다. 종이 위에 하지 못한 말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담기도 한다.


3. 한지의 새로운 만남

전통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산업화에 밀려 잊혀지는 듯했던 한지는 민관의 노력으로 다시 한번 부흥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통기성이 높고 인장력이 강한 한지의 특성을 살려 옷을 만들기도 하고, 현대식 주거 생활에 맞는 건축 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옻칠 등을 더하여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한지를 가공하여 동물의 가죽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대체제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렇듯 한지는 다양한 쓰임으로 일상의 삶에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지의 탄생

일반적으로 종이는 목재로 만들어진다.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비목재 섬유로 종이를 만든다.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 한국의 한지는 모두 목재가 아닌 섬유로 만드는 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원료의 구성과 제작 공정상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 다른 종이의 특성을 갖는다. 중국의 선지의 경우 대나무나 청단피, 볏짚 등을 활용하는데 글씨와 그림을 표현하는데 있어 농도를 다르게 하여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지만 종이의 강도와 보존 수명이 한지에 비해 떨어진다. 일본의 화지는 닥나무 껍질이나 삼지닥나무 껍질로 만드는데 섬유의 폭이 좁다. 조직이 치밀하고 매끄러워 인쇄성이 높은데 비해 잘 찢어지고 내구성이 약하다. 그러나 한지의 주 재료가 되는 닥나무는 꾸지나무와 애기닥나무의 자연 교잡에 의해 만들어진 잡종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의 특산 수종이다. 닥나무 껍질을 활용한 섬유 조직은 길이가 긴 것은 60~70mm까지 되는 장조직으로, 일반종이의 원료가 되는 목재펄프(섬유)에 비해 섬유 조직의 길이가 길고 결합도가 높아 종이의 강도가 높고 질긴 종이를 만들 수 있다.


한지의 우수성은 원료의 특별함에만 기대지 않는다. 제작 공정에서도 몇 가지 차이가 발생하여 한지의 보존력을 높여준다. 한지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한국의 전통 제작 기법인 ‘외발뜨기(흘림뜨기)’를 활용한다. 외발뜯기는 섬유질이 담긴 물을 앞에서 뒤로, 그리고 좌에서 우로 흘려보내며 섬유질이 수직으로 교차하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종이를 제작하면 섬유질이 격자무늬로 조직되며 엉키게 되어 특정 방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장섬유의 특성을 유지하며 내구성이 높은 종이가 된다.


한국의 전통 제작 기법인 ‘외발뜨기’을 활용하여 종이를 만든다. ‘외발뜨기’는 섬유질이 담긴 물을 앞에서 떠서 뒤로 흘려보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반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을 흘려 #모양으로 섬유질이 교차하도록 제작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종이 제작을 하면 장섬유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내구성 높은 종이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선지나 화지는 쌍발뜨기(가둠뜨기)라는 제작 공정을 취한다. 이는 틀 안에 섬유질만 남기고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인데, 생산성이 높지만 종이의 강도가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닥나무를 삶을 때 잿물을 사용하여 종이의 강도를 높이고, 내구성과 보존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선지 및 화지와의 또 다른 장점은 제작의 마무리 단계에서 한지만이 유일하게 도침을 한다는 것이다. 도침은 종이를 다듬잇돌에 올려 두고 두드려서 윤기가 나고 매끄럽게 하는 과정인데, 이를 통해 섬유조직이 보다 치밀해지고 종이에 광택을 만들어 준다.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종이의 최대 보존 기간이 약 200여년인데 비하여 한지는 1,000년 이상 그 품질을 유지하는 우수한 성질을 갖게 된다.


한지에 담긴 역사

한지가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2~4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3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삼국 중 북쪽에 위치해 있어 당나라와 국경을 맞닿은 고구려는 가장 먼저 ‘만지(蠻紙)’라 불리는 우수한 종이를 생산하였으며,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수출하여 당대의 문인들이 애호하는 종이였다고 기록에서는 전한다. 만지는 닥나무와 마로 만들어져 질기고 흰 빛을 띄었다. 이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닥나무를 사용하여 변색이 잘 되지 않는 ‘백추지’를 만들었다. 현존하는 기록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물이라 추정되는 ‘무구정광다라니경(ca. 705~751)’을 보면 닥나무 종이에 목판으로 새겨진 불경이 현재까지 남아 당시의 제지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통일신라의 멸망 이후 등장한 고려는 현재 대한민국의 영어 명칭인 ‘Korea’의 어원이 될 정도로 다양한 나라와 활발한 교역을 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는 한지의 수요가 급증하여 종이 제작을 비롯 인쇄 문화가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1145년에는 전국에 닥나무를 심도록 권장하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이의 수급 및 생산을 관리하였다. 이렇게 생산된 ‘고려지’는 두껍고 단단하며, 광택이 나는 세계 최고의 종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종이와 인쇄기술의 발달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출간되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정받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비롯해서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난중일기』 『동의보감』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 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기록유산의 중심에는 한지가 있다.


한지로 만드는 오늘

전통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를 거듭하는 전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산업화 이후 양산된 종이에 밀려 한지의 전통이 사라지는 듯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정부에서는 한지를 제작하는 기술을 복원하고 후대에 남기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한지를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한지가 갖는 장점을 살려 기록 매체 분 아니라 의식주를 포함하는 현대인들의 삶 전반에 한지의 쓰임을 넓혀왔다.


한지의 사용은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만드는 데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 특성을 반영한 건축 양식에서도 한지는 빠질 수 없는 소재였다. 한지는 창문이 되기도 하고, 장판지가 되기도 하였으며, 벽지로도 사용하였다. 돌로 만든 서양의 건축과는 달리 나무와 흙을 주된 재료로 좌식 문화가 결합한 한국의 건축에서 한지는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한지가 갖는 뛰어난 통기성과 습도 조절 능력이 무덥고 습한 여름에는 공간을 쾌적하게 하고 건조하고 추운 겨울에는 보온성을 높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지를 여러 겹 겹쳐 갑옷으로도 활용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한지의 인장력을 활용하여 만든 가죽으로 가방이나 옷 등을 만들어 환경을 생각하는 대체제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한지로 연과 같은 놀이 기구도 되고, 우산이나 부채와 같은 생활 필수품이 되기도 하였고, 물건을 보관하는 함이나 바구니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지는 모양을 한없이 바꾸며 삶 전반에 녹아 있다. 한국 문화는 한지를 통해 전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지에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담아 동시대 디자이너들과 예술가들은 현재의 풍경을 만든다. 《한지, 종이에 담긴 삶》은 한지를 매개로 문화적 역동성을 품은 한국의 오늘을 바라본다. 동시대의 장인들과 공예가, 디자이너가 만든 한지 작품을 통해 의, 식, 주 전반에 걸친 한지의 다양한 쓰임과 가치를 살펴본다.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이 묘사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시각적 풍경으로 마주해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한지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청각적 요소를 통해 한지가 빚어내는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전시장으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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