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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발해(8세기)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신라의 영토와 인구는 크게 늘고, 경제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삼국통일 과정에서 한때 전쟁을 벌였던 신라와 당은 우호 관계를 회복했고, 두 나라의 상인, 승려, 유학생들은 활발히 왕래했다. 무역도 활발해져서 신라는 당에 금·은 세공품, 인삼 등을 수출하고, 서적, 도자기, 비단, 옷, 공예품 등을 수입했다. 또한 비단길과 해상을 통해 서역의 문물과 상인들이 신라에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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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통일신라, 8세기)
현존하는 가장 큰 종으로 무게가 18.9t에 달한다.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린다. 오른쪽 사진에서는 신라의 세공기술을 엿볼 수 있다.



신라의 주요 항구로는 울산항과 당항성(경기도 화성)이 있었으며, 이곳을 통해 서역과 동남아시아의 물품들이 들어왔다. 9세기 초 신라의 장군 장보고는 청해진(전라남도 완도)이라는 해적 소탕 기지이자 무역 거점을 설치하고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 거점을 마련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들의 당에 대한 저항은 계속됐다. 698년 대조영 등 고구려 유민들은 말갈족과 함께 만주 지린성 동모산 근처에 발해를 건국했다. 발해의 건국으로 한반도와 만주 지역은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대립하는 형세가 됐다.

발해는 영역을 확장해 옛 고구려 영토를 대부분 회복했다. 무왕 때는 북만주 일대를 장악했으며, 문왕 때는 체제를 정비해 755년경 수도를 상경(흑룡강성 영안현 일대)으로 옮겼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며, 일본에 보낸 문서에도 고구려왕을 뜻하는 ‘고려왕’이라고 표현했다. 발해는 해동성국으로 불릴 만큼 번영했으나 백두산 화산 폭발과 거란의 침략으로 926년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