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개

KOREAN CULTURAL CENTER

  • 한국 소개
  • 역사
  • 신라의 삼국통일


5세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은 강력한 왕 중심의 통치체제를 갖추고 팽창을 도모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의 수도 한성을 점령하는 등 한강 지역은 물론, 죽령(오늘날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영주 일대)에서 경기도 남양면에 이르는 선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 같은 팽창으로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광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게 됐다.



성덕대왕신종(통일신라, 8세기) 

현존하는 가장 큰 종으로 무게가 18.9t에 달한다.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린다. 오른쪽 사진에서는 신라의 세공기술을 엿볼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6세기) 

백제 시대의 공예와 미술 문화, 종교와 사상, 제작 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하자 475년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후 국력을 강화하여 잃은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동성왕은 신라와 동맹을 강화하고 고구려에 맞섰다. 무령왕은 지방통제를 강화하면서 중흥의 기반을 마련했다.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수도를 사비(부여)로 다시 옮기고 체제를 정비하면서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회복했다. 신라는 6세기 초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바꾸고 정치제도를 정비했으며 수도와 행정구역을 정리했다. 특히 512년 우산국을 정복해 영토에 편입했다. 우산국은 현재의 울릉도와 그 부속 도서인 독도다.


법흥왕은 율령 반포, 공복 제정, 불교 공인을 통해 통치체제를 안정시켰으며, 금관가야를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등 중앙집권 국가로서 체제를 정비했다.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빼앗고, 고령의 대가야를 멸망시켜 낙동강 유역을 모두 차지했으며, 동해안을 따라 함흥평야까지 영토를 넓혔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10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특히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612년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수의 군사를 거의 전멸시켰는데, 이를 살수대첩이라고 한다. 국력이 소모된 수나라를 618년에 멸망시킨 당나라도 고구려를 수차례 침략했으나 실패했다. 


고구려가 수와 당의 침입을 막아내는 동안 백제는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신라는 고구려와 동맹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당과 손을 잡고 백제를 침공했다. 김유신이 거느린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 결사대를 격파하고 백제의 사비성에 진출했다. 한편 당나라 군대는 금강하구로 침입했다. 신라와 당의 협공을 받은 백제는 660년에 항복했다.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동북아시아의 최강국가인 고구려를 공격했다. 중국의 두 제국과 오랜 전쟁을 치러 국력이 소모돼 있던 터라 고구려 또한 668년에 멸망했다. 당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 고구려 지역에는 안동도호부 등을 만들어 직접 통치하고, 신라의 수도 경주에도 계림도독부를 설치해 한반도를 지배하려고 획책했다. 이에 신라는 당나라에 맞서 전쟁을 벌여, 금강하구의 기벌포에서 당의 수군을 격파해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으며,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도 몰아냄으로써 676년 삼국을 통일했다.